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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 여행/산티아고 순례길 후기

[산티아고 순례길 후기21] 아스토르가(Astorga), 낭만이 있는 도시에 가다!

by 완자야 2024.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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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은 2023년 10월 ~ 11월에 부부가 같이 다녀온 산티아고 순례길(프랑스길)의 기록입니다.

그 당시 틈틈이 적어두었던 기록과 기억을 토대로 순례여행 중에 있었던 일들과 당시 저희들의 느낌을 솔직하게 담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또한 순례길을 준비하는 예비 순례자분들에게 최대한 도움이 되고자 필요한 정보들을 정리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저희들의 인생에서 값지고 소중한 시간들이었던 이번 순례여행의 기록들이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글이 제법 길기 때문에 후기글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읽으시길 권합니다.

도움이 될 만한 정보성 내용들은 볼드체(굵은 글씨) 명조체의 푸른색 글씨로 표기해 놓았습니다. 
정보가 필요하시다면 볼드체와 명조체의 푸른색 글씨 부분들 위주로 참고하세요.

그럼, 오늘도 부엔 까미노!

 

 

 

산티아고 순례길 후기, 아스토르가


 
2023년 11월 5일(일)
오늘은 정든 레온을 떠나 아스토르가(Astorga)로 갑니다. 버스를 타고 아스토르가로 이동 후 가우디의 또 다른 건축물인 주교궁(Palacio de Gaudí Astorga)이 있는 아스토르가에서 하루 더 쉬기로 하였습니다.
 
아스토르가는 행정구역상으로는 까스띠야이레온(Castilla y León) 지역에 속한 지방 자치 단체이고, 가톨릭 교구로는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되고 넓은 지역 교구의 중심이 되는 도시라고 합니다.
또한 아스토르가에는 청동기 시대 이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주석으로 만든 유물이나 스페인 최초 인류에 대한 여러 화석 기록들이 발견되는 등 역사적/고고학적으로도 중요한 곳이라고 합니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아스토르가는 '유럽의 초콜릿 발상지'로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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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구간: 레온(León) - 아스토르가(Astorga)

이동거리: 약 49.7km

출발시간: 10시 15분

도착시간: 11시 05분

도착숙소: Albergue de peregrinos de Astorga (공립)

 
 
아침에 일어나 눈을 떴습니다. 어제 밤의 싱숭생숭한 기분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아내는 씻으러 나갔는지 자리에 안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도나'양과 '미카엘라'양도 자리에 없습니다. '따수미'양과 '안티모'는 커튼이 드리워진 베드에 아직 누워있는 것 같습니다.
 
부스스 일어나 밖으로 나갔습니다. 부지런한 아내는 씻은 후 배낭을 꾸리며 다시 떠날 채비를 벌써부터 하고 있었고 '도나'양과 '미카엘라'는 각자 혼자 앉아서 명상에 잠긴 듯 합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저도 씻고 출발할 채비를 합니다.
 
저희는 오늘 오전 10시 15분에 레온에서 아스토르가로 가는 Alsa 버스를 탑승할 예정입니다. 버스 터미널까지는 도보로 약 20여분 정도 소요되는데, 넉넉하게 1시간 전에 숙소에서 버스터미널로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아내와 제가 배낭을 꾸리고 출발할 준비를 하는 동안 패밀리들은 숙소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짐 정리를 마친 후 빠뜨린 물품은 없는지 다시 한번 베드를 둘러본 후 아내와 저는 패밀리들이 있는 카페로 향했습니다. 기온이 조금 더 떨어진 것 같습니다.

 
 
카페에 들어가 따뜻한 커피를 한잔 마시면서 담소를 나눕니다. 이별을 앞둔 상태라 그런지 저희도 패밀리도 차분하고 조용한 대화를 드문 드문 이어가며 커피를 마십니다. 테이블에는 아직 덜 먹은 케이크와 빵 조각이 올라간 접시가 놓여져 있습니다.

 

옆에 있던 '안티모'가 저에게 무언가를 내밉니다. 순례길에서 순례자들의 나침반이 되어주는 순례길 특유의 노란색 화살표 키링입니다. 저와 아내의 앞길을 축복하는 의미라고 합니다. '안티모'는 늘 주위 사람을 잘 챙깁니다. 뭐 하러 이런 걸 준비했냐고 되물으며, 고맙게 받아서 제 배낭에 달았습니다. 어디서 주웠다고 합니다.

 
 
이제 출발할 시간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패밀리들은 아내와 제가 배낭을 둘러메는 모습을 애처로이 바라보는 듯 합니다. 다 같이 모여 마지막 사진 촬영을 하며 오늘 이 시간을 추억으로 남깁니다.

 
'안티모' 동생과 '미카엘라'양이 떠나는 저희들의 뒷모습을 남겨주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시장이 선 것 같습니다. 레온의 상징인 '사자'의 다리(Puente de los Leones)를 건너 레온 버스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습니다.

 
도착하고보니 조금 더 있다가 올걸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소 30~40여분을 더 기다려야 했는데 날씨가 상당히 쌀쌀해서 기다리는게 쉽지도 않았고, 패밀리들과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터미널 버스 승강장 앞에 있는 공용 벤치 끝에 걸터앉아 버스를 기다립니다. 각 승강장마다 사람들이 한둘씩 둘셋씩 서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머니에 가지고 있던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 오니 오전부터 이미 만취한 것 같아 보이는 영어를 할 줄 모르는 현지인 청년이 아내 옆에 앉아서 수작을 부리고 있고 그 옆에서 아내는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다가가 강렬한 눈빛으로 '어디서 개수작이야?'를 시전하며 그 앞에 서서 팔짱을 낀 채 그를 내려다봅니다. 그는 갑자기 횡설수설 말이 많아집니다. 혀꼬인 스페인어가 들립니다. 분명히 만취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에게서 느껴지는 포스에 조금 긴장한 듯합니다. 그리고는 이내 자리를 뜹니다. 짜식.

 
버스 탑승시간이 다가오자 승강장 앞에 사람들의 줄이 생기고 저희도 일어나 줄을 선 후 버스를 탑승하고 출발합니다. 레온으로 올 때 탔던 버스와 같은 버스인 것 같습니다.


*레온 - 아스토르가 버스 이동:
버스표 예매는 오미오(omio) 앱을 사용하였습니다. 레온에서 아스토르가까지 소요시간은 약 50분 정도 소요되었고, 요금은 인당 4.4유로(EUR)였습니다. 단, 실제 버스요금은 4.4유로라도 오미오(omio) 앱으로 예매를 하게 되면 결제할 때 앱 수수료가 붙어서 그런지 적게는 1~2유로, 많게는 3~4유로 더 높은 금액을 결제해야 했습니다. 

 

저희가 실제 결제한 내역을 확인해보니 실제 지불된 티켓비용은 인당 5.06유로(EUR) 였으며 수수료가 인당 2.03유로(EUR)로 인당 총 비용은 7.09유로(EUR) 였습니다.

 
앱으로 예매를 하고 나면 위 사진과 같은 전자 티켓을 발급받습니다. 버스를 탑승할 때는 전자 티켓에 있는 QR코드로 확인을 받고 탑승을 했습니다.


 
 
레온에서 아스토르가까지는 약 50km 정도 떨어져 있고, 걸어서 간다면 이틀이 소요되는 거리인데 타자 마자 도착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날씨가 화창해서 그런지 아스토르가의 첫 느낌은 맑고 포근했습니다. 레온의 버스터미널은 조금 휑한 느낌이었다면, 아스토르가의 버스터미널은 산뜻한 느낌이었습니다.

 
 
터미널을 나오니 눈앞에는 가우디의 주교궁(Palacio de Gaudí Astorga)과 산타마리아 대성당(Cathedral of Santa María de Astorga)이 푸른 잔디와 파란 하늘 속에서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버스터미널을 걸어나오면 눈앞에 이 장면이 연출됩니다.

 
 
이 멋진 광경을 따라 내려가 마을 초입으로 갑니다. 오늘 저희가 묵을 숙소는 아스토르가의 공립 알베르게로 도보 약 15분 거리에 있는 곳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후 1시에 문을 연다고 합니다. 순례길 출발 이후 공립 알베르게에 1등으로 도착해 보기는 처음입니다^^.

 
 
알베르게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가 점심식사를 하기로 합니다. 단지 알베르게에서 가까워서 간 곳이었는데 먹어보니 굉장한 맛집이었습니다. 식당 이름은 Rio's Irish Tabern 입니다.
 

 
*RIO’S Irish Tabern 식당:
저희는 이곳에서 점심식사로 폭립(Pork rib)과 버섯파스타(funghi pasta)를 사 먹었습니다. 주문을 하니 감자튀김과 크로케타(Croqueta, 우리가 '고로케'라고 부르는 음식) 타파스가 애피타이저로 무료 제공되었습니다. 스페인에서 빵이 아닌 애피타이저가 무료로 나오는 곳은 매우 드뭅니다. 사진에 보이는 음료는 탄산수(Agua con gas)로 별도 주문을 해야 했습니다.
 
큰 기대하지 않고 주문한 음식이었으나 생각보다 너무 맛있었습니다. 순례길에서 먹는 식사는 실제 그 음식이 맛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고단한 그 날의 일과로 인해서 그 맛이 배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지난 며칠 힘들게 걷지도 않았고 레온에서 이것저것 맛있는 음식들도 많이 먹은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의 식사는 굉장히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저녁식사도 이 곳에서 하였습니다. 저녁에는 빠에야(Paella)를 먹었는데, 제 개인적으로는 순례길에서 먹어본 빠에야 중에서 가장 맛있는 곳이었습니다. 에스떼야(Estella)에서 큰 기대를 가지고 먹었던 빠에야가 실망스러워서 아쉬웠는데, 이 곳에서 너무나 맛있는 빠에야를 먹음으로 제 마음에는 위로가 되었던 곳입니다.

( ☞ 에스떼야에서의 이야기 바로가기 )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식당은 새벽까지 영업을 하는 선술집이었습니다. 처음 들어갔을 때도 내부 인테리어가 아늑한 선술집 갔다는 느낌이 들긴 했습니다. 그러니 식당 이름도 '리오 씨의 아일랜드식 선술집' 이었던 것입니다.


식당의 이름인 Tabern(타베른)을 찾아보니 사전에 나오지 않았고, 그 대신 Tavern(태번)이라는 단어가 있었습니다.
Tavern(태번)은 사람들이 모여서 술을 마시거나 음식을 제공하는 장소로 대부분 여행자들이 하숙을 하는 곳을 의미했고, 우리가 여관이라고 알고 있는 Inn(인)은 하숙 면허가 있는 Tavern(태번)이었다고 합니다. 그 후 시간이 지나면서 이 Tavern(태번)과 Inn(인)은 동의어처럼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Tavern(태번)이라는 단어는 창고, 작업장, 매점 또는 술집을 의미하는 라틴어 Taberna(타베르나)에서 파생된 단어라고 합니다. 
 
아늑한 선술집 같은 분위기의 이 식당은 구글맵의 정보에 의하면 아침 6시부터 새벽 03시까지 영업을 하는 곳입니다.


 
 
식사를 마치고 알베르게 앞으로 가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립니다. 곧 오후 1시가 되고 문이 열립니다. 저희가 생장에서 순례길을 출발한 이후 처음으로 공립알베르게에 1등으로 도착해 보았습니다. 비록 버스를 타고 와서 그런 것이긴 하지만 기분은 좋습니다.
 
들어가니 밝은 표정의 여성분이 체크인을 도와주십니다. 저희들이 부부인 것을 확인하시더니 2인실 도미토리를 제공해 주셨습니다. 웃으며 저희들에게 '단 하나뿐인 2인실 차지하다니 매우 Lucky' 하다고 이야기해 주십니다. 이곳에는 2층 침대가 한 세트 들어가 있는 작은 방이 딱 하나 있는데 감사하게도 그 방을 저희가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잘 되었습니다.
 

 
*아스토르가 공립 알베르게(Albergue de peregrinos de Astorga):
인당 7유로(EUR)의 저렴한 공립 알베르게입니다. 그러다 보니 전반적으로 많이 낡은 느낌이 드는 곳이었습니다. 2층 침대가 있는 도미토리가 여러 개가 있었고, 남녀가 구분되어 있지 않은 공용 화장실과 샤워장이 있었습니다.
 
샤워할 때 온수가 아주 약하게 나와서 샤워를 할 때 많이 추웠습니다. 그리고 남녀가 공용으로 사용하는 샤워장이었지만 문과 문고리 등이 많이 낡아서 샤워할 때 조금 불안한 느낌이 들었습니다(샤워하는 도중에 열릴까 봐).
 
그렇지만 조리가 가능한 주방이 있었습니다. 주방에서는 맛있는 음식을 해 먹고 즐겁게 대화하는 순례자들의 목소리가 저녁 늦게까지 들렸습니다.
 
알베르게 홈페이지에 가면 알베르게의 내/외부 모습을 360도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아스토르가 공립 알베르게 홈페이지: http://www.caminodesantiagoastorga.com


 
 
알베르게 1층의 베드에 앉아서 아내와 함께 앞으로 남은 일정을 점검하고 계획을 다시 세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늦어도 11월 18일까지는 마드리드로 가야 하고,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도착 후 시간을 내어 피스테라(Fisterra)와 무시아(Muxía)에서 최소 1박은 하고 오기 등 처음 순례길을 출발하기 전에 세워 놓았던 큰 일정들을 기준으로 역산해 보니 11월 15일까지는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에 도착을 해야 했습니다. 중간에 들르는 큰 도시들 마다 연박을 하고 특히 레온에서는 더 긴 휴식을 가진 결과, 남은 일정들이 촉박해졌습니다.

 

우선은 오늘까지 총 5박 6일간의 휴식시간을 가졌으니 앞으로 남은 구간은 최대한 '걸어서 간다'는 대원칙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일정은 '11월 15일까지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에 도착'이 가능하도록 세웠습니다. 이 일정을 위해서는 일부 구간은 추가적인 '점프'가 필요했습니다.
 
'철의 십자가'가 있는 폰세바돈(Foncebadon)이나 '스페인 하숙'으로 유명해진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Villafranca del Bierzo) 등과 같이 꼭 가보고 싶은 곳을 정하고, 점프하여 뛰어넘을 곳을 정했습니다. 긴 휴식시간을 가지긴 했지만 여전히 무릎과 발은 불안정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심한 오르막과 내리막 구간(오 세브레이로 구간 등)'을 점프하기로 하였습니다.
 
계획 수립을 완료하고 나니 오후 4시가 지나고 있었습니다. 이제 밖으로 나가서 가우디의 주교궁으로 향했습니다. 왜냐하면 비수기인 11월부터는 주교궁의 오후 오픈시간이 오후 4시 ~ 6시 30분까지였기 때문입니다. 주교궁에 대해서는 조금 있다가 자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Palacio Gaudi라고 되어 있는 안내표지판을 따라 아스토르가 시내길을 걸어갑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는 건물 벽화도 나옵니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동화책 속에서 나올 것 같은 예쁘장한 외관의 주교궁이 나왔습니다. 

 
*가우디의 주교궁(Palacio de Gaudí Astorga):
저는 건축에는 문외한인 사람이지만, 그런 제 눈에 가우디의 건물은 특색이 있는 것 같습니다. 레온에서 가 본 보티네스 저택(Casa Botines)을 보면서도 느꼈지만, 아스토르가의 주교궁에서도 가우디만의 독창성과 특별함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지난번 레온 보티네스 저택에 대한 포스팅에서 설명드린 것처럼 안토니 가우디는 스페인 카탈루냐 지역 출신입니다. 그리고 카탈루냐 지역의 중심은 바르셀로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우디가 남긴 유명한 건축물들은 대부분 스페인을 중심으로 한 카탈루냐 지역에 남아있게 된 것입니다. 스페인 가우디투어를 바르셀로나로 가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그런 가우디가 카탈루냐 지역이 아닌 다른 지역에 남긴 단 3개의 건축물이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바로 아스토르가에 있는 이 주교궁이라고 합니다. ( ↓↓ 레온의 명물 보티네스 저택에 대한 이야기 바로가기)
 

 

[산티아고 순례길 후기20-3] 레온 보티네스 저택(Casa Botines)

레온에는 가우디가 남긴 보티네스 저택이 있습니다. 순례길을 다녀온 후 아내와 저는 순례길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사건들을 추억하며 그 시절의 기억에 빠져들곤 하는데요, 아마 이런 게 흔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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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토르가 가우디 주교궁의 역사 및 건축 양식

사실 아스토르가의 가우디 주교궁이 "가우디가 카탈루냐 지역이 아닌 다른 지역에 남긴 단 3개의 건축물(Gaudi only built three buildings outside Catalonia)"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레온의 보티네스 저택 박물관 안에서 본 설명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주교궁에 대해서 조금 더 조사를 해보니 순수하게 가우디가 건축한 건물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가우디가 지은 주교궁이라고 알려진 이 건축물은 1889년 ~ 1913년 사이에 지어졌는데 이 중에서 가우디가 관여한 기간은 1889년 ~ 1893년이라고 합니다. 그 후에는 다른 사람에 의해 완공되었다고 합니다. 건축의 후반은 다른 건축가가 진행하기는 하였지만, 초기 설계와 디자인 그리고 시공도 모두 가우디가 진행했던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가우디의 건물이라고 평가되는 것 같습니다. 
 
12세기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원래 있던 주교 궁전은 19세기에는 폐허 상태였으며, 1886년 12월 23일에는 화재로 완전히 소실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당시 아스토르가 로마 가톨릭 교구의 그라우(Grau) 주교가 자신의 친구였던 안토니 가우디에게 새 건물의 설계를 의뢰하면서 이 프로젝트는 시작되었습니다.
 
새로운 프로젝트의 설계를 의뢰받았을 당시 가우디는 구엘 궁전,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등 다른 여러 프로젝트들로 인해서 많이 바빴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건축과 설계를 위한 지형과 주변 환경 조사를 위해 아스토르가로 올 수가 없어서 주교에게 해당 장소에 대한 사진과 그림 등 정보를 자료로 받았고, 받은 자료들을 토대로 건축설계를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그간의 경험과 지식 위에 본인의 감각과 상상을 더해 설계작업을 한 것인데요, 참 대단한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가우디는 자신의 건축 디자인을 의회로 보냈고 몇 가지 수정 작업을 거친 후 1889년 2월에 최종 승인을 받았으며, 그 해 6월 건축을 위한 첫 돌이 놓였다고 합니다. 건축이 진행되는 동안 가우디는 1890년에 두 번, 1892년에 네 번, 1893년에 네 번 아스토르가를 방문했다고 합니다.
 
건축이 진행중이던 1893년에 그의 친구이자 주교였던 그라우(Grau)가 사망하였는데, 그가 사망하자 건축과 시공을 진행함에 있어서 의회와 가우디는 의견의 불일치로 마찰을 빚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가우디는 해당 프로젝트를 사임했고 건축은 수년동안 중단되었다가 '리카르도 가르시아 게레타'라는 건축가에 의해 다시 시작되어 1915년에 완공되었다고 합니다. 
 
몇 년 후, 이사벨 데 보르본(Isabel de Borbón) 공주가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를 방문했을 때 가우디를 만나서 그 당시 사임 이유에 대해서 물었다고 합니다. 그때 가우디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부인, 저는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저를 쫓아내었습니다"
 
가우디의 대답을 보면 그 당시 가우디와 의회의 마찰이 상당했던 것 같습니다. 까다로운 천재 건축가의 요구사항이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의회의 입장에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았던 것일까요? 아니면 가우디가 날카로운 성격의 사람이었을까요? 아무튼 오늘날에도 독창적이고 독특한 그의 건축은 어쩌면 그 당시에는 '독창'을 넘어 '파격'적인 것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실제로 주교궁의 박물관에 가보니 그 당시 가우디가 의회로 보낸 가우디의 친필 서한과 초기 설계도면 같은 것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건축 초기 가우디가 아스토르가를 방문했을 때의 비용에 대한 청구 서한과 본인의 프로젝트 사임 의사를 밝히는 가우디의 친필 서한 등이 있었는데요, 그것을 보니 그 당시의 상황이 생생하게 그려지는 듯하였습니다.
 

 
 
이 건물의 건축 양식은 가우디의 신고딕 시대(1888~1898)에 속하는 것으로 네오 고딕 양식으로 분류된다고 합니다.
 
 

아스토르가 가우디 주교궁의 내부

주교궁은 주교를 위한 공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내부는 가톨릭 교구 행정을 보는 사무실, 주교실, 알현실, 예배실 그리고 침실과 주방 등의 생활공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사용된 장식용품과 오래된 동전 등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아스토르가 가우디 주교궁 개방시간 및 입장요금

계절별로 개방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방문 계획이 있으신 분들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방문 시간을 확인하고 방문하시기 바랍니다. 성수기라고 할 수 있는 5~10월에는 저녁 8시까지 개방이 되지만, 비수기인 11~4월에는 저녁 6시 30분까지 밖에 개방하지 않습니다. 또한 오후 2~4시에는 개방하지 않습니다. (☞ 홈페이지 방문 시간표 바로가기)

 
 
입장티켓은 일반(General) 입장티켓 기준, 인당 6유로(EUR)이고, 고령자와 학생 그리고 순례자들은 5유로(EUR)에 입장이 가능했습니다.

 
입장티켓은 홈페이지에서 미리 사전 구매도 가능하고, 현장 구매도 가능합니다. 저희는 현장 구매하고 들어갔습니다.
( ☞ 홈페이지 입장티켓 예매 바로가기 )

 
 
위치는 아스토르가의 산타 마리아 대성당 바로 옆에 있습니다.
 - 구글맵 위치: https://maps.app.goo.gl/qdCcFMa1Wh1PGfRA8
 


 
 

 
 
비수기였지만 저희 외에도 생각보다 많은 관광객들이 주교궁을 방문했었습니다. 한국분들도 계셨고, 다른 외국분들도 계셨습니다. 가우디 주교궁은 외관은 매우 독특하였지만, 내부는 레온에서 봤던 보티네스 저택에 비교하면 더 작고 덜 화려하였습니다. 아마도 주교의 공간이어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밖으로 나오니 오후 5시 55분이었습니다. 생각보다 너무 오래 구경을 한 것 같습니다. 바로 옆에 있는 으리으리한 산타 마리아 대성당에 들어가 보고 싶었으나 오후 6시에 문을 닫는다고 해서 입장하지 못했습니다.

 
 
할 수 없이 시내 쪽으로 걸음을 옮겨서 걷습니다. 이제 목적지는 없습니다. 걷다가 식사를 하고 숙소로 들어가면 됩니다. 걸어가면서 보니 여기저기에 초콜릿을 파는 상점들이 많이 보입니다. 그리고 파이처럼 생긴 것을 파는 곳이 많이 보입니다.
 
그 당시에는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아스토르가는 '유럽의 초콜릿 발상지'이며, '만테카다(Mantecadas)'와 '오할드레(Hojaldres)' 파이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진작에 알았더라면 아스토르가에서 이들을 한번 사 먹어 보았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들립니다. 아는 것이 힘입니다.

 
*아스토르가의 초콜릿: 이야기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시대로 거슬로 올라갑니다.
유럽에 코코아콩(Cocoa Bean)이 들어온 것은 1502년 콜럼버스가 인디언 추장에게 선물로 받아 온 것이 최초라고 하는데 그때에는 이 열매의 가치를 사람들이 제대로 알지 못했었다고 합니다. 그 후 에스파냐는 1521년 에르난 코르테스(Hernán Cortés) 장군을 앞세워 멕시코를 정복하였는데, 그가 자국으로 돌아올 때 코코아콩(Cocoa Bean)을 가지고 들어와 스페인 왕실에 헌납하면서 스페인에서 초콜릿이 만들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여 유럽에서는 스페인에서 처음으로 초콜릿이 만들어지고 그 후 여러 경로를 통해 유럽 전역으로 확산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스페인에서 초콜릿이 처음 만들어졌던 장소가 아스토르가 지역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스토르가는 '유럽의 초콜릿 발상지'라는 수식어를 가진 도시가 되었겠지요. 1914년에 아스토르가 마을에 있던 초콜릿 공장은 모두 49개였다고 하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5개의 공장은 운영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1994년 문을 연 아스토르가 초콜릿 박물관도 있다고 합니다. (아스토르가 초콜릿 박물관 위치: https://maps.app.goo.gl/YMBf93p9AsDzrWaB7)
 
*만테카다(Mantecadas)와 오할드레(Hojaldres):
만테카다는 프랑스 마들렌 케이크와 유사한 파운드케이크이고, 오할드레는 영어로 프 페이스트리(Puff Pastry)라고도 불리는 버터와 밀가루가 층상 구조를 이루는 과자/파이인데, 아스토르가가 이들로 유명한 지역인 듯합니다. 그리고 이들을 만드는 유명한 제조사는 알론소(Alonso)라는 브랜드의 기업인 것 같습니다. 걸어 다니는데 위 사진의 제품이 진열된 상점들이 매우 많았습니다. 먹어보진 못했지만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번 먹어보고 싶습니다.


 
 
주교궁에서 숙소까지 오는 길에 들어가 보고 싶은 마땅한 식당이나 카페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오다 보니 이제 숙소가 다 와갑니다. 저희는 점심을 맛있게 먹었던 RIO’s Irish Tabern 식당으로 가서 저녁을 먹기로 하였습니다. 이번에는 빠에야를 주문했습니다. 이번에도 감자튀김과 크로케타 타파스 한 접시가 무료로 제공되었습니다.
 
빠에야가 정말 맛있었습니다. 단연코 지금까지 먹어본 빠에야 중에서 최고의 빠에야였습니다. 적당히 간이 된 해산물과 채소가 조화를 이루었고, 또 팬(Pan)에 적당히 눌어붙어 꼬들꼬들해진 스페인 쌀(밥)알의 식감이 정말 일품이었습니다. 아스토르가에 다시 갈 수 있다면 그때에도 저는 이 빠에야를 먹고 싶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밤공기가 차갑습니다. 레온에 있을 때보다 더 추워진 듯합니다. 얼른 숙소로 돌아와 내일을 준비합니다. 온수가 잘 나오지 않아서 추웠는지 샤워하고 돌아온 아내의 입술이 새파랗습니다. 1층 같은 침대 위에 누워서 아내의 몸이 녹을 때까지 꼭 껴안아 주었습니다.
 
내일은 철의 십자가 길목에 있는 라바날 델 까미노(Rabanal del Camino)까지 걸을 예정입니다. 오랜만에 다시 걷습니다. 아내의 무릎이 아프지 않고 잘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일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자리에 누웠습니다. 지하에 있는 주방에서는 외국인 순례자들의 즐거운 저녁식사 소리가 늦게까지 이어졌습니다. 창문으로는 매서운 바람 소리가 들립니다. 내일을 기약하며 잠을 청합니다.
 
다음편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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