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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 여행/산티아고 순례길 후기

[산티아고 순례길 후기22] 라바날 델 까미노(Rabanal del Camino), 다시 걸어 갑니다.

by 완자야 2024.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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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은 2023년 10월 ~ 11월에 부부가 같이 다녀온 산티아고 순례길(프랑스길)의 기록입니다.

그 당시 틈틈이 적어두었던 기록과 기억을 토대로 순례여행 중에 있었던 일들과 당시 저희들의 느낌을 솔직하게 담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또한 순례길을 준비하는 예비 순례자분들에게 최대한 도움이 되고자 필요한 정보들을 정리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저희들의 인생에서 값지고 소중한 시간들이었던 이번 순례여행의 기록들이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글이 제법 길기 때문에 후기글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읽으시길 권합니다.

도움이 될 만한 정보성 내용들은 볼드체(굵은 글씨) 명조체의 푸른색 글씨로 표기해 놓았습니다. 
정보가 필요하시다면 볼드체와 명조체의 푸른색 글씨 부분들 위주로 참고하세요.

그럼, 오늘도 부엔 까미노!

 

 

 

산티아고 순례길 후기, 라바날 델 까미노

 

 

2023년 11월 6일(월)

펠리페 2세는 에스파냐의 황금시대라 불리는 스페인 최전성기 시대(16세기)를 이끌었던 카스티야의 왕입니다. 오늘 저희들의 목적지인 라바날 델 까미노(Rabanal del Camino)에는 이 펠리페 2세가 지나가다가 묵었던 방이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있는 마을입니다. 또한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중세시대부터 많은 순례자들이 찾고 지나가던 마을이었다고 합니다. 오늘은 라바날 델 까미노까지 걸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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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구간: 아스토르가(Astorga) - 라바날 델 까미노(Rabanal del Camino)

이동거리: 약 19.8km

출발시간: 08시 00분

도착시간: 13시 00분

도착숙소: Albergue municipal de Rabanal del Camino (공립)

 

 

기온이 많이 떨어진 듯합니다. 밤새 많이 추웠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목도 약간 칼칼한 것 같습니다. 창 밖을 보니 붉은 아침 태양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모든 알베르게들의 좁은 샤워실 특성상 머리를 감으면 전체적인 샤워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오늘은 머리를 감지 않고 간단히 세수만 하고 출발하기로 합니다.

 

 

 

 알베르게를 나서는데 방명록 노트가 보입니다. 이틀전에 다녀간 두 분의 방명록이 있었는데 모두 다 한국분들이었습니다. 저희도 간단히 인사를 남기고 출발합니다.

 

알베르게 앞에 문을 연 카페가 하나 있습니다. 어제 저녁식사를 했던 Rio's Irish Tabern 바로 옆에 있는 Cuadros Café-Pub 이라고 하는 카페입니다. 따뜻한 커피와 초코라떼로 몸을 데운 뒤 옆 테이블의 순례자분들과 아침 인사를 나눈 후 출발합니다.

 

 

아스토르가를 빠져나오는 길목에 아스토르가의 명물 과자인 만테카다(Mantecadas)와 오할드레(Hojaldreds)를 판매하는 상점들이 많이 보입니다. 미리 알았더라면 한번 사 먹어 보고 올걸, 아쉬운 마음입니다. 만테카다와 오할드레에 대해서는 지난 포스팅 아스트로가 편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 ☞ 순례길 후기 아스토르가 편 바로가기 )

 

시내를 벗어나 본격적인 순례자들의 길로 들어섭니다. 날씨는 쌀쌀하고 추워서 장갑을 껴도 손가락이 시릴 정도였지만, 그래도 비가 오지 않아서 좋습니다. 파란 하늘과 붉은 태양이 만들어 내는 빗깔로 물든 단풍잎은 길 위 여기저기에 내려앉아 있습니다. 아내가 그중에 이쁜 것을 골라 들어 가까이서 감상합니다. 사진을 찍으려 하자 아내가 특유의 초절정 귀요미 포즈인 '고개 90도 꺾기'를 시전 합니다.

 

 

아스토르가를 빠져나와 약 1시간 정도를 걸어 무리아스 데 레치발도(Murias de Rechivaldo) 마을을 지나갑니다. 우리가 약 3주째 걷고 있는 이번 여정의 최종 종착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258.7km가 남아있다는 표지석이 나옵니다. 남은 키로(km) 수가 700, 600, 500km 일 때는 언제 이 길을 다 걸어갈까 싶었는데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길도 이쁘고 하늘도 이쁩니다. 그런데 저 멀리 하늘에 심상치 않는 검은 구름들이 모여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비가 오려나 봅니다. 비가 오는 것보다는 날씨가 맑은 것이 좋습니다. 그렇지만 비가 온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상심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비가 와도 저희들에겐 비옷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비옷을 입더라도 옷과 신발은 젖을 수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마를 것입니다. 그리고 비는 그치고 하늘은 다시 개일 것입니다.

 

 

한편, 레온에서 출발한 패밀리들은 지금 300km 남은 지점을 통과했다는 소식을 알려왔습니다. 우리는 지금 서로 다른 구간을 걷고 있지만, 이렇게 소통하며 걸어가니 마치 함께 걸어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받은 소식에 저희도 저희 소식을 보내주었습니다. 이렇게 먼저 소식을 보내주고 순례길의 경험들을 전해주어서 고마웠습니다.

 

 

약 2시간쯤 걸어가 큰 바위가 입구를 지키고 있는 산타 카탈리나 데 소모사(Santa Catalina de Somoza)라는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마을로 들어서니 태극기가 걸려있는 알베르게 겸 카페가 있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이곳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하고 들어갔습니다. 따뜻한 우유가 들어간 커피인 까페 꼰 레체(Café con Leche)와 케이크를 하나 시키고, 순례자 여권인 크레덴시알(Credencial)에는 방문 확인 도장(Sello, 쎄요)도 찍습니다. 여기 쎄요는 본인이 직접 찍는 '셀프' 서비스 방식인데 크레덴시알의 두 칸을 차지하는 큰 사이즈의 순례자 그림 쎄요와 순례자의 신발 그림 쎄요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Albergue El Caminante: 산타 카탈리나 데 소모사 마을 초입에 있으며 저희들의 오전 순례길의 휴식처가 되어준 곳입니다.

 

노상에 배치된 의자와 테이블 그리고 노란색 간판들로 소위 '갬성' 있어 보이는 곳이었으며, 특이하게도 태극기가 외벽에 걸려있었습니다. 들어가 보니 주인장이 한국분은 아니셨고 스페인 현지분이셨습니다.

 

 - 카페 위치: https://maps.app.goo.gl/u8hx8DcWLbs9oYzC6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있으니 오전 순례길 위에서 스쳐 지나가며 만났던 배가 볼록하고 귀여운 표정의 중장년 서양 남성 한분이 들어오십니다. 저희를 먼저 발견하시고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어주신 후 저희 테이블이 마주 보이는 건너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으셨습니다. 그분은 주문을 하신 뒤 입고 계시던 점퍼와 겉옷을 벗으셨는데, 그분의 인품(배) 실루엣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타이트한 아웃도어 긴팔 티셔츠를 입고 계셨습니다. 오전에 열심히 걸으셨는지 그 분의 체온과 쌀쌀한 날씨로 인해 몸에서는 김이 살짝살짝 올라오고 있었고 겨드랑이 아래는 땀으로 살짝궁 젖어 있는 듯했습니다.

 

재미있었던 것은 배낭에서 꿀통과 스푼을 꺼내시더니 본인이 주문하신 음료에 꿀을 몇 스푼 타서 드셨습니다. 볼록한 배에 귀여운 표정으로 꿀통에서 꿀을 한 숟갈 떠내는 모습이 마치 곰돌이 푸우를 연상시켰습니다. 혼자서 고개를 떨구고 속으로 웃으며 커피를 마저 마십니다.

 

그분의 정확한 이름과 국가가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분은 수년 전 순례길에서 아름다운 한국인 여성을 만나서 사랑에 빠졌다고 합니다. 그후 그 한국인 여성과는 수년을 함께 하다가 지금은 헤어졌다고 하시며, 그녀와의 아름다웠던 추억으로 인한 것인 듯한 늬앙스로 본인의 한국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강조해서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다시 순례길을 걷고 있으며 새로운 사랑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수많은 순례자들이 순례길을 걸어가지만, 그들이 걷고 있는 이유와 목적은 모두 다르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비슷할 순 있지만 동일하진 않을 것입니다. 저마다의 이유와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이유와 목적일 것입니다. 그것에 집중하며 걷는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그 귀여운 아저씨에게 '부엔 까미노' 인사를 하고 저희는 다시 출발했습니다. 걸어가다 보니 길 위에 멋들어진 집이 한 채 있었습니다. 큼지막한 돌을 쌓아 올려 만든 스페인의 집들은 하나같이 다 멋있는 것 같습니다.

 

 

순례길을 걸으며 들르는 마을의 집들을 보면서 아내와 저는 생각했습니다. 스페인의 집들이 멋이 있다고. 순례길 초반에 우리 까미노 패밀리 결성의 시작이자 중심이 되어주셨던 '선생님'은 '스페인은 돌이 유명하다'고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길을 걸으며 그 말이 맞다고 여러 번 느꼈습니다. 독일에서 40년째 살고 계신 '선생님'은 독일의 부잣집에 가면 스페인에서 가지고 온 큰 바위들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내와 저는 스페인의 집들은 '문(Door)'이 멋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스페인의 문들은 대부분 크고 웅장하며, 또 그 형태와 모양이 다 다르게 생긴 것 같았습니다.

 

만약 제가 직접 제가 살 집을 지을 수 있다면, 저는 스페인 순례길 마을에서 만났던 집들처럼 벽과 대문을 짓고 싶습니다.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계속 걸어갑니다. 오늘의 목적지인 라바날에 도착하기 전에 엘 간소(El Ganso)라는 마을이 나오는데 이곳에 굉장히 흥미로운 숙소가 있었습니다.

 

인디언의 길(Indian Way)이라는 이름의 이 알베르게는 순례길과는 다소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인디언' 콘셉트의 인테리어를 가지고 있는 숙소입니다. '티피(Tipi 또는 Tepee)'라고도 불리는 '인디언 천막' 형태의 이 숙소는 순례길에서는 멀찍이 떨어져 있어서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새로운 것에 대한 시도에 호기심을 느끼는 저에게는 굉장히 흥미로운 곳이었습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구글 평점 4.9점의 이 숙소는 세상 친절한 동네형 또는 동네삼촌 같은 느낌의 마동석 닮은 주인장이 운영하고 있으며 뜨거운 온수 콸콸 나오고 무엇보다 빠에야의 맛집으로 엄청 유명한 곳이라고 합니다. 나중에 다시 한번 걸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이 숙소에서 꼭 묵어보고 싶습니다. 아내도 그러기로 동의했습니다^^.

(위치: https://maps.app.goo.gl/xvG4XadfYg7hQHsX8)

(출처: 구글)

 

아쉬움을 뒤로하고 엘 간소 마을을 지나갑니다. 이제 라바날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비가 내렸다가 그쳤다가를 반복합니다. 비도 오고 날씨도 추워 비옷을 바람막이 삼아 입은 채 걸어갑니다. 오늘의 목적지와 남은 거리를 알리는 표시석이 나옵니다. 순례길의 오른편으로는 소들이 풀을 뜯고 있습니다. 이윽고 오늘의 최종 목적지 라바날 델 까미노에 도착했습니다.

 

 

대한민국 산티아고 순례자협회(caminocorea.org)에 따르면 라바날 델 까미노에는 펠리페 2세가 묵었던 방이 오늘날까지도 보존되어 있다고 하며, 정직한 마부가 봉헌한 보물로 지어졌다는 전설이 있는 산 호세 소성당(Capilla de San Jose)도 있다고 합니다.

 

오늘 저희가 묵을 숙소는 Albergue municipal de Rabanal del Camino라는 곳으로 이곳은 공립 알베르게 입니다.

 

원래 저희는 한국 라면과 김치 제공으로 한국인 순례자분들에게 아주 유명한 곳'누에스트라 세뇨라 필라 알베르게(Albergue Nuestra Señora del Pilar)'로 가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예약이 꽉 찼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공립 알베르게로 갔습니다. 공립 알베르게는 필라 알베르게 바로 앞에 있습니다. 

 

알베르게 입구 바닥에는 귀여운 페인팅이 되어 있었습니다. 페인팅은 숙소로 들어갈 때는 '환영합니다'라는 뜻의 '비엔베니도(Bienvenido)'가, 숙소를 나갈 때는 '즐거운(또는 좋은) 길 되세요'라는 '부엔 까미노(Buen Camino)'가 바로 보이도록 페인팅 되어 있었습니다. 오후 1시 정도에 도착을 했는데 오늘도 저희가 1등입니다. 저희는 어제 아스토르가에 이어 이틀 연속 1등으로 도착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습니다^^.

  

*Albergue municipal de Rabanal del Camino 공립 알베르게: 건물의 외관은 다소 무뚝뚝해 보이는 벽돌집처럼 보이지만, 내부는 나무를 이용해서 인테리어를 하였으며 난로도 있어서 마치 산장에 온 것 같은 아늑한 느낌을 주는 알베르게였습니다.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이 알베르게는 저희가 갔을 때는 11월 비수기에 접어들어서 그런지 2층에 있는 도미토리 룸은 운영하지 않았고, 1층에 있는 도미토리만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1층 도미토리에는 2층 침대가 총 10세트 들어가 있는 20인실 도미토리였고, 도미토리 내부에 화장실과 샤워실이 같이 되어 있는 Rest room이 2개 있었습니다.

 

좋았던 것은 일회용 침대시트가 아니라 깨끗이 세탁을 한 천으로 된 침대시트와 베개시트가 제공된 점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일회용 비닐 시트보다 세탁이 된 천 시트가 훨씬 더 좋았습니다. 제공되는 천 시트의 색상이 하얀색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은은한 파스텔 톤의 색상이었던 것도 독특했습니다. 천 시트 외에 추운 사람들을 위해 담요도 같이 제공이 되는데 '베드버그(Bed bug)'에 대한 공포심으로 인해 저희는 담요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저희가 1등으로 도착을 해서 저희는 맨 안쪽에 난로 옆에 있는 베드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별로 없어서 둘 다 1층을 사용했습니다. 이 날 저희 포함해서 총 8명이 묵었기 때문에 모두 다 1층을 사용했었습니다.

 

2층에는 조리가 가능한 주방이 있으나, 식사를 할 수 있는 공용 테이블은 4인이 둘러앉으면 적당하고 많이 둘러 앉으면 6명 정도는 가능할 것 같아 보이는 테이블이 딱 하나뿐이었습니다. 숙소 앞마당에도 야외 테이블이 있긴 했으나 비수기에는 춥기도 하고 비도 자주 와서 야외 테이블은 사실상 이용이 어려울 것으로 본다면, 숙소에서 소수가 조리해 먹기에는 괜찮을 것이나 4~6인 이상의 다수가 조리해서 먹기에는 조금 불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날 아내는 난로 바로 옆에 자리를 잡았음에도 매우 추워하였습니다. 위아래로 긴 옷에 경량패딩을 입고 침낭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써도 추워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날씨 자체가 많이 춥기도 했거니와 돌로 된 건물에서 나오는 냉기까지 더해져 그랬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실제로 그다음 날 아침에 기온은 0도로 떨어지고 가는 길에 우박과 눈이 왔었으니 날씨는 정말로 춥긴 추웠습니다.

 

이 숙소의 장점은 인당 10유로라는 저렴한 가격과 겨울 산장으로 캠핑을 온 것 같은 분위기 그리고 깨끗한 느낌을 주는 천 시트 그리고 조리가 가능한 주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외에도 더 많은 장점들이 있을 것이나 저희가 다 발견하진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숙소의 단점은 조금 춥다는 것과(물론 이것은 날씨가 추워서 그런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2층 바닥과 문이 나무로 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이동할 때 끼익 거리는 소리가 많이 나는 점, 그리고 도미토리 내부에 화장실과 샤워실이 있어서 사용하는 소리가 밖에서 잘 들린다는 점입니다.

 

 - 숙소 위치: https://maps.app.goo.gl/Cu9Lr8hJQMFqxHHE6 

 

 

*라면과 김치로 유명한 필라 알베르게(Albergue Nuestra Señora del Pilar): 저희가 비록 이곳에 묵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여기 라면과 김치가 유명하다고 하여 저녁식사를 여기서 하려고 계획을 했었습니다. 그 당시 '까친연(까미노 친구들 연합)' 네이버 카페에서 운영하는 오픈 채팅방을 통해서 저희는 굉장히 많은 도움을 받고 있었는데, 그런데 그날 오후 그 오픈 채팅방에 올라온 정보로는 필라 알베르게에서 라면이 이제 안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희는 다른 식당에 가서 저녁식사를 하였는데, 저녁에 우연히 만난 '예슬'양은 그날 저녁 그곳에서 라면 식사를 했다고 합니다.


   

 

숙소에서 짐을 푼 후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저희는 간단히 점심 식사를 해 먹기로 했습니다. 점심메뉴는 라면입니다. 2층 주방에 올라가 가지고 있던 컵라면 3개를 뜯어서 냄비에 넣고 끓였습니다. 젓가락도 없고 국물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은 없고 접시뿐입니다. 하지만 꿀맛입니다. 냄비째 들고 마시는 라면 국물 맛이 일품입니다. 몸이 녹아내리는 듯합니다.

 

 

배를 든든히 채운 후 도미토리 베드 위에 누워서 휴식 시간을 갖습니다. 쉬는 동안 아내는 바느질을 합니다. 반짇고리는 언제 챙겨 온 것인지 모르겠지만, 잘 챙겨온 것 같습니다. 아내의 발에 물집이 잡혔을 때에도 유용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이마에 찬 헤드랜턴이 절묘합니다.

 

 

내일 아침에 간단히 먹을 요거트와 음료, 간식 등을 사러 마을 슈퍼마켓에 갔습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는 그냥 맞으며 걸어가다가 빗발이 점점 거세어져 비옷을 꺼내어 입고 다시 걸어갑니다. 오후시간이라 그런지, 비가 와서 그런지 구글맵으로 검색해 보니 나오는 모든 슈퍼는 문을 닫았고 딱 한 군데 문을 연 곳이 있습니다. 슈퍼 앞에는 여러 종류의 호박들이 진열되어 예쁘게 진열되어 있습니다. 비를 맞아서 표면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습니다.

 

우리 한글의 수사적 표현에 이쁘고 잘생긴 것은 '수박'에 비유하고, 못생긴 것은 '호박'에 비유하는 경우가 있는데, 순례길의 호박들은 다 이쁜 것 같습니다. 내 마음의 상태에 따라서 호박이 이뻐 보이기도 하고, 수박도 못나 보이기도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여러 가지 많은 것들을 깨닫게 해 주는 순례길입니다. (그런데 내 마음 상태를 떠나 보더라도 스페인의 호박은 이쁘게 생긴 것 같습니다.)

 

 

슈퍼에서 간단한 구매를 한 후 마을을 한번 둘러보기로 합니다. 슈퍼 근처에 중세 시대의 건물처럼 보이는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산살바도르 델 몬테 이라고 수도원(Monasterio de San Salvador del Monte Irago)이라고 합니다. 문은 굳게 닫혀 있습니다. 기도회 시간 안내문이 걸려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한국어로 된 안내문구도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 라바날 델 까미노 마을에 한국인 신부님이 계신다고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까친연 오픈 채팅방을 통해 검색을 해보니 맞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방문한 기간에는 신부님이 휴가 중이셨다고 합니다.

(산살바도르 델 몬테 이라고 수도원 위치: https://maps.app.goo.gl/T4q6WipD153UnWBo6)

 

 

마을이 그렇게 크지가 않아서 한 바퀴 돌아보는 데에도 오래 걸리진 않습니다. 마을에 도착했을 때 마을 초입에 있던 간판 색깔이 강렬하고 이뻐서 인상적이었던 곳에 도착했습니다. 그린 가든(Green Garden)이라는 곳입니다. 작은 슈퍼마켓을 같이 운영하고 있는 캠핑장으로 캠핑장은 성수기에만 운영하고 비수기에는 슈퍼만 운영한다고 합니다. 슈퍼에서 커피도 가능하다고 하여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시켰습니다. 그랬더니 냉장고에 있던 이미 만들어져 있던 아메리카노를 컵에 부은 후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주십니다. 괜히 시킨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커피를 한잔 받아와 캠핑장에 있는 벤치로 가서 앉았습니다. 그래도 캠핑장이 분위기가 좋습니다. 날씨가 좋은 날 이런 곳에서 캠핑을 해 보는 것도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비가 와서 그런지 아무도 없습니다. 비에 젖은 오두막 아래에서 미지근한 커피를 마시며 잔디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는 것도 낭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시간을 기념하기 위한 사진을 남깁니다.

 

그러다가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 마법사가 들렀다가 깜빡하고 놓고 간 듯 한 나무 지팡이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신비로워 보이는 이 지팡이를 가지고 걸으면 다리가 하나도 아프지 않고 순식간에 천리를 갈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아니 날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착각이었습니다. 날지도 않았고, 들고 다니기에는 너무 무거웠습니다.

 

(*지금 이 Green Garden을 구글맵에서 검색해 보니 나오지 않습니다. 폐업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녁식사는 알베르게 근처에 있는 El Refugio Hosteria라는 곳에서 운영하는 식당으로 갔습니다. 사실 다른 데는 다 문을 닫은 것 같았고 여기밖에 선택권이 없었습니다. 식당은 굉장히 고급스러운 느낌이었고, 손님이 없어서 조용한 분위기였습니다. 저희 두 명 외에는 각기 홀로 저녁식사를 하시던 장년의 서양인 남성분 두 분뿐이었습니다.

 

*El Regugio Hosteria 식당: 마치 중세 시대의 식당에 온 듯한 느낌의 외관을 가지고 있었고 내부는 깨끗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이었습니다.

 

저희는 인당 15.5유로(EUR)인 순례자 메뉴(Menu Camino)를 주문했습니다. 음식은 애피타이저로 야채 수프와 빵이 나왔습니다. 빵과 스프 그 자체로는 평범하였지만, 빵을 떼어 따뜻한 수프에 넣어서 먹으니 특별한 요리가 된 듯한 느낌입니다. 쌀쌀한 날씨가 따뜻한 야채 수프를 더 맛있게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메인 요리는 몇 가지 중에서 선택할 수 있었는데 아내는 돼지고기 스테이크(Pork Steak)를, 저는 초리조(Chorizo)와 계란프라이를 주문하였습니다. 초리조의 맛은 매우 훌륭했고, 돼지고기 스테이크는 보통이었습니다. 공통적으로 나오는 감자튀김도 갓 튀겨져 나온 것이라 그런지 맛있었습니다. 다만, 아내의 감자튀김에 파리 한 마리가 같이 튀겨져 있어서, 직원분께 이야기하고 감자튀김을 새로 한 접시 받았습니다. 

 

디저트로는 달콤한 푸딩이 나왔는데 푸딩 위의 코코아 가루가 순례길의 화살표 모양으로 뿌려져 있어서 먹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음료도 와인 1잔이 같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괜찮은 저녁 식사였습니다.


 

밥을 먹고 나오는데 식당 문이 열리며 낯익은 한국어 대화 소리가 들립니다. 로그로뇨와 부르고스에서 우리 패밀리들과 함께 같이 저녁식사를 했었고 저의 경상도식 억양을 놀려댔던 '예슬'양입니다. 저희가 버스로 점프를 하고 레온에서는 4박을 하는 등 일정이 엇갈려 못 만날 줄 알았는데 우연히 이곳 라바넬에서 만나게 된 것입니다.

 

'예슬'양은 새로이 사귄 한국 순례자분들 세 분과 함께였습니다. '필라 알베르게'에서 그 유명한 라면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이곳 식당으로 가볍게 와인을 마시러 나왔다고 합니다. '예슬'양에 의하면 라면이 가능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와인 한 잔이 가능한 곳은 지금 이 식당 밖에 없어서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비수기라서 그런지 가는 곳마다 문을 연 곳보다는 문을 열지 않은 곳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뜻밖의 반가운 만남으로 '예슬'양과 잠깐의 담소를 나눈 후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내일을 위한 준비를 합니다. 내일 입을 옷가지와 침낭을 제외하고는 배낭을 싸놓습니다. 내일은 폰세바돈을 지나 그 유명한 '철의 십자가(Cruz de Ferro)'를 지나갈 예정입니다.

 

그런데 날씨가 점점 추워져서 걱정입니다. 아내는 누에고치 속에 들어간 애벌레 마냥 침낭을 폭 뒤집어쓰고 누웠지만 그래도 추워합니다. 날씨 앱을 통해서 확인한 내일 아침 최저기온은 0도이고 비와 눈이 예상된다고 합니다. 저, 저기요, 아직 11월 첫째 주인데 이러기 있나요? 추운 날씨가 걱정스러운 밤입니다.

 

 

다음편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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