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티아고 순례 여행/산티아고 순례길 후기

[산티아고 순례길 후기9] 순례자의 목마름을 채워주는 와이너리, 보데가스 이라체를 지나 로스 아르코스(Los Arcos)로!

by 완자야 2024. 1. 13.
반응형
블로그를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은 2023년 10월 ~ 11월에 부부가 같이 다녀온 산티아고 순례길(프랑스길)의 기록입니다.

그 당시 틈틈이 적어두었던 기록과 기억을 토대로 순례여행 중에 있었던 일들과 당시 저희들의 느낌을 솔직하게 담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또한 순례길을 준비하는 예비 순례자분들에게 최대한 도움이 되고자 필요한 정보들을 정리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저희들의 인생에서 값지고 소중한 시간들이었던 이번 순례여행의 기록들이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글이 제법 길기 때문에 후기글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읽으시길 권합니다.

도움이 될 만한 정보성 내용들은 볼드체(굵은 글씨) 명조체의 푸른색 글씨로 표기해 놓았습니다. 
정보가 필요하시다면 볼드체와 명조체의 푸른색 글씨 부분들 위주로 참고하세요.

그럼, 오늘도 부엔 까미노!

 

 

 

산티아고 순례길 후기, 로스 아르코스, 보데가스 이라체

 

 

 

2023년 10월 19일(목)

옛날부터 까스띠야와 나바라 왕국의 국경에 위치하여 역사적으로 특히 상업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다고 하는 로스 아르코스(Los Arcos)는 어느 왕으로부터 하사 받은 '활이 그려진 그림' 때문에 마을 이름이 '아르코스(Arcos: 활 모양의)'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에스떼야에서 로스 아르코스로 가는 길의 초반 구간은 다양한 볼거리와 재미로 즐거운 길이나, 후반부 마지막 12km 구간은 쉬어갈 마을이 없이 긴 거리를 걸어가야하는 다소 도전적인 구간이었습니다. 

 

 

더보기

이동구간: 에스떼야(Estella) - 로스 아르코스(Los Arcos)

이동거리: 약 21.5km

출발시간: 08시 10분

도착시간: 14시 00분

도착숙소: Albergue La fuente Casa Austria (사립 알베르게)

 

 

 

어제는 정말 오랜만에 편안한 침대에서 깨지 않고 푹 잘잔것 같습니다.  상쾌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어제 묵은 에스떼야의 Alda Hostel에 조식이 포함되어 있어서 오늘은 너무 일찍부터 서두르지 않고, 조금 천천히 준비하고 조식을 먹고 나섰습니다.  순례길 시작 후 거의 대부분을 해가 뜨기 전 캄캄한 새벽에 출발했었는데, 아침 해가 밝은 후에 출발해 보니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캄캄할 때 출발하면 사실상 해가 뜨기전 1~2시간은 그냥 캄캄한 길을 걷는 것뿐인데, 해가 뜬 후 길을 걸어가면 도시나 마을의 모습과 풍경을 더 많이 볼 수 있게 되어서 좋은 것 같습니다.

 

에스떼야의 광장에 아침 시장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아주 흥미로운 표지판을 하나 발견합니다.  이 표지판이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해지고, 상상을 하게 됩니다.  아마도 길거리에 '변'이 많이 있어서 그런게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그런데 길거리에 왜 '변'이 많은 걸까요?  정말로 신기합니다.  유럽도 사람사는 곳인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드는 순간입니다.

 

에스떼야를 벗어나자마자 곧 그 다음 마을인 아예기(Ayegui) 마을이 나타납니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출발한 저희는 마을을 지나치고 지나갑니다.  아예기 마을을 벗어나 흙길로 접어들자 저만치 앞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것이 보입니다.  가까이 가보니 그곳은 '아예기 대장간(Forjas Ayegui)'이었습니다.  한쪽에서는 아들로 보이는 한 청년이 열심히 쇠를 달구고 대장장이질을 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아버지로 보이는 분은 이 대장간에서 직접 만든 수공예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저희도 기념으로 순례자의 상징인 가리비 모양의 목걸이를 하나 장만합니다.

(아예기 대장간 위치: https://maps.app.goo.gl/jfxqCyAmFoqn33Hn9)

 

 

 

하늘이 심상치 않습니다.  아무래도 곧 비가 올 것 같은 느낌입니다.  발걸음을 재촉하고 걸어갑니다.  에스떼야를 지나 로스 아르코스로 가는 길에는 순례길에서 너무나 잘 알려진 그 유명한 일명 '포도주 수도꼭지'가 나오는 구간이라고 들었던 기억이 있어서 예의주시하며 걸어가는데 조금 전의 그 대장간을 지나자마자 바로 그 곳 수도꼭지가 있는 보데가스 이라체(Bodegas Irache, 이라체 와이너리)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는 줄 몰랐네요.  아예기를 지나 그 다음 마을인 이라체(Irache) 마을로 가는 길의 중간에 있을 줄 알았는데 이라체보다는 오히려 아예기 마을에 가까운 위치에 있었습니다.

 


*보데가스 이라체(Bodegas Irache): 까미노에서 가장 특이한 수도꼭지가 있는 와이너리입니다.  두 개의 수도꼭지가 있는데 오른쪽 수도꼭지에서는 시원하나 생수가, 왼쪽의 수도꼭지에서는 핑크빛의 포도주가 나옵니다.  이 길을 걷는 순례자라면 누구나 이 수도꼭지를 틀어 포도주를 받아마시고, 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을 겁니다.

 

와이너리 입구에 있는 글귀의 뜻은 이러하다고 합니다.

 

순례자여!

산띠아고에 힘과 활기를 가지고 도달하고 싶은 이에게

여기 있는 포도주 한 모금이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다.

 

이라체의 샘 / 포도주의 샘

 

저희도 물병 하나를 꺼내 물을 비우고 포도주로 채워서 갔습니다.  이 포도주는 로스 아르코스까지 가는 길의 든든한 에너지원이 되어주었습니다.  이 날따라 기온이 뚝 떨어지고 비가 왔었거든요.  위치는 이라체 수도원(Monasterio de Santa Maria de Irache) 맞은편에 있었습니다. (위치정보: https://maps.app.goo.gl/ji4wqMzD9j2xBAUt8)


 

포도주 수도꼭지에서 받은 포도주를 한 모금 마시는데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이라체 와이너리 옆에서 얼른 배낭을 내리고 비옷을 꺼내 입었습니다.  쏟아지는 비는 아니지만 비가 내립니다.  나지막한 오르막길이 이어집니다.  몸의 열기가 비옷으로 인해 빠져나가지 못하고 비옷 안에서 뜨겁게 몸을 데웁니다.  어느새 옷은 땀으로 젖어듭니다.  나중에는 땀인지 비옷 안으로 스며든 빗물인지 분간이 어렵습니다.  개인적으로 꿉꿉함을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비옷을 입고 땀 흘리며 걷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열심히 걷다가 내리는 빗방울이 조금 약해진 틈을 타서 비옷을 열어서 몸의 열기를 식힙니다.

  

 

시원합니다.  그런데 기온이 많이 떨어져서 그런지 금방 몸의 열기가 내려가고 시원함을 넘어선 쌀쌀함이 느껴집니다.  비옷을 바람막이 삼아 입고 걸어갑니다.  조금 열심히 걸으면 몸에서 열이 올라와 더워져 비옷을 활짝 열어젖히면, 금세 몸이 식어 쌀쌀해져서 다시 지퍼를 올려 입습니다.

 

걷다 보니 오늘 구간에서의 마지막 마을인 비야마요르 데 몬하르딘(Villamayor de Monjardín)에 도착합니다.  이 마을에서부터 약 12km 떨어져 있는 오늘의 목적지 로스 아르코스까지는 중간에 쉴 수 있는 마을이 전혀 없는 구간이라고 합니다.  이 순례길을 걸으시는 분들은 이 구간에 대비해서 미리 마지막 마을에서 허기를 채우고 가거나, 여분의 간식거리를 꼭 준비해 가실 것을 추천합니다.  저희는 약간의 간식거리도 있고, 이라체에서 받아온 포도주도 있어서 로스 아르코스까지 한번 가보기로 하고 쉬지 않고 마을을 지나쳐 걸어갑니다.

 

약 1~2시간을 더 걸어가다 보니 날씨는 점점 쌀쌀해지는 듯하고 체력은 점점 더 떨어져 허기가 찾아오기 시작합니다.  무엇보다 걸어도 체온이 많이 떨어져서 비옷을 계속 입고 걸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순례자들에게 오아시스와 같은 Food Truck이 나타났습니다.  푸드트럭의 이름도 'Pilgrim's Oasis(순례자의 오아시스)'입니다.

 

반가운 마음에 아내와 같이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몸을 녹이기로 하고 가까이 다가갑니다.  그곳에서 저희보다 먼저 출발했던 패밀리들을 만납니다.  '선생님'과 '도나'양, '따수미'양, '미카엘라'양 그리고 '안티모' 동생이 먼저 도착해서 커피와 케이크로 에너지를 충전 중입니다.  고맙게도 늦게 도착한 저희를 기다렸다가 같이 출발해 줍니다.  출발하려는데 에스떼야에서 만났던 '호준'군도 합류합니다.


*Pilgrim's Oasis 푸드트럭 위치: https://maps.app.goo.gl/GUBShZ2KsrrgqY5x8 

사실 이곳에 푸드트럭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피레네 산맥을 넘을 때도 경험을 했지만, 푸드트럭은 있을 때도 있지만 없을 때도 있습니다.  특히 비수기(동절기) 기간에는 더욱 그러하지요.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오전보다 더 많은 비가 계속 내립니다.  오후 2시가 다 되어서 숙소(Albergue La fuente Casa Austria)에 도착할 때 즈음에 저희는 완전히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었습니다.  저마다 입고 있던 비옷을 힘겹게 벗은 뒤 입구에 대충 널어놓고 축축한 몸으로 숙소에 들어가서 체크인을 하고 베드를 배정받습니다.


*Albergue La fuente Casa Austria 사립 알베르게: 오늘 묵은 숙소는 우리 패밀리의 골드 막내 '미카엘라'양이 예약을 도와준 사립 알베르게였습니다.  알록달록 아기자기한 인테리어의 숙소였고, 남녀가 구분된 공용 화장실과 욕실이 있었습니다.  주방은 조리가 가능했고, 나름대로 식기가 잘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다만, 철제로 된 이층침대가 조금 삐그덕 거렸습니다.  그리고 방에 충전할 수 있는 콘센트가 별로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개인적으로 저와 아내는 창문 바로 앞에 있는 베드를 배정받았는데, 창문 바로 밖에 있던 마을 길가의 가로등 불빛이 그대로 비치어 들어와 눈이 부셔서 밤에 잠을 들기가 어려워서 고생했던 알베르게 였습니다.  내부 사진은 남기지 못하고 알베르게 입구 사진만 있네요ㅠㅠ.


 

 

 

씻고 개인정비를 합니다.  오늘은 비를 맞으며 걸은 날이라 옷가지들이 젖어서 개인정비할 일들이 많습니다.  게다가 몸은 더 피곤한 날이었습니다.  저희는 내일 입을 옷이 있어서 빨래는 오늘 하지 않고 내일 도착하는 숙소에서 한꺼번에 세탁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개인정비를 마친 후 근처 슈퍼마켓에 가서 저녁거리 장을 봐 옵니다.  저희랑 함께 걷고 계신 '선생님'께서 내일 로그로뇨를 마지막 일정으로 순례길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계획이기 때문에 다 같이 해먹을 기회가 앞으로 잘 없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또 '선생님'께서 원하기도 하셨고요.  '선생님'의 원래 계획은 당초 '생장에서 팜플로나까지'만 걸을 계획이셨는데, 팜플로나에서 저희들과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져 계획을 바꾸어 그다음 대도시인 로그로뇨까지 더 걷기로 하신 것이었습니다.

 

 

 

주방장 '선생님'을 중심으로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저녁을 준비합니다.   고기도 굽고, 모두의 몸을 녹일 따뜻한 수프도 만들고, 올리브와 채소 그리고 잘 구워진 파이도 나누어 먹었습니다.  감미로운 와인이 모두를 녹이고 여독을 풀어줍니다.  잘생기고 감상적인 '안티모'동생이 용서의 언덕을 넘으며 가졌던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대화에 깊이를 더해줍니다.  

 

순례길에서 이런 만남을 가지게 될 줄은 출발하기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내와 함께 저희들의 길을 묵묵히 걸을 거라고만 생각을 했었더랬지요.  순례길을 걸으며, 인생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참 많이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순례길과 인생길이요.

 

그렇게 로스 아르코스에서의 저녁은 깊어만 갑니다.  시간이 되어 소등이 되고 베드에 누웠지만 잠을 쉬이 들지 못합니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이 밝아서이기도 하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굵직한 코 고는 소리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도 코를 고는 사람 중의 한 명으로서 오늘도 최대한 코를 골지 않기 위해서 옆으로 누워 애써 잠을 청하며 눈을 감습니다.

 

내일은 순례길에서 만나는 두 번째 대도시 '로그로뇨'로 가는 날입니다.  기대가 됩니다.

 

 

다음편도 기대해 주세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