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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 여행/산티아고 순례길 후기

[산티아고 순례길 후기26] 포르토마린(Portomarín)으로 갑니다.

by 완자야 2024.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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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은 2023년 10월 ~ 11월에 부부가 같이 다녀온 산티아고 순례길(프랑스길)의 기록입니다.

그 당시 틈틈이 적어두었던 기록과 기억을 토대로 순례여행 중에 있었던 일들과 당시 저희들의 느낌을 솔직하게 담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또한 순례길을 준비하는 예비 순례자분들에게 최대한 도움이 되고자 필요한 정보들을 정리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저희들의 인생에서 값지고 소중한 시간들이었던 이번 순례여행의 기록들이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글이 제법 길기 때문에 후기글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읽으시길 권합니다.

도움이 될 만한 정보성 내용들은 볼드체(굵은 글씨) 명조체의 푸른색 글씨로 표기해 놓았습니다. 
정보가 필요하시다면 볼드체와 명조체의 푸른색 글씨 부분들 위주로 참고하세요.

그럼, 오늘도 부엔 까미노!

 

 

 

산티아고 순례길 후기, 포르토마린

 

 

 

2023년 11월 10일(금)

오늘은 포르토마린(Portomarín)으로 가는데요, 포르토마린으로 가는 길에는 100km 표지석이 있어서 유명한 곳입니다. 그런데 포르토마린은 사실은 그보다 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지닌 마을이었습니다.

 

포르토마린은 갈리시아 지방에서 가장 긴 강미뇨(Miño)강을 가로지르는 로마 다리(Ponte Vella: 갈리시아어로 Old bridge라는 의미이고, Ponte Romana(Roman bridge)라고도 부르는) 옆에 건설된 마을인데, 1960년대 미뇨강에 벨레사르(Belesar) 저수지의 건설로 인해 물에 잠기게 되는 바람에 마을 전체를 지금의 위치로 이동/재건된 마을이라고 합니다.

 

로마 다리는 배를 타지 않고 미뇨강을 건널 수 있었던 유일한 수단으로 갈리시아 지방 역사에서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다리였습니다. 하지만 로마인들이 건설하였던 최초의 다리는 자신의 남편 알폰소 1세와 맞섰던 '도냐 우라카(Doña Urraca)'의 명령으로 파괴되었고, 후에 재건되었다고 합니다. 포르토마린은 그렇게 재건된 새 로마 다리(New Bridge and Bridge Vella)를 통해 미뇨강을 건너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도냐 우라카는 페르난도 1세와 산차의 첫째 딸로 지난번에 올린 포스팅 중 레온의 산 이시도르 대성당 편에서 잠깐 다루었는데요, 산 이시도르 대성당에는 '도냐 우라카의 성배'가 소장되어 있어서 유명한 곳입니다. (☞ 레온 산 이시도르 대성당 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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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구간: 사리아(Sarria) - 포르토마린(Portomarín)

이동거리: 약 22.4km

출발시간: 09시 20분

도착시간: 16시 30분

도착숙소: Albergue-Pension Manuel (사립)

 

 

오늘은 숙소에서 제공해주는 조식을 느긋하게 먹고 천천히 출발했습니다. 조식은 간단한 뷔페로 나왔었는데,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음식들 외에 따뜻하게 갓 만들어져 나온 에그 스크램블과 베이컨을 마음껏 먹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사리아 숙소 정보는 사리아 편 포스팅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 ☞ 사리아 편 바로가기 )

 

 

아침을 든든히 먹고 출발을 해서 오늘은 큰 어려움 없이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리아를 빠져나가는 길은 언덕을 오르는 길이었습니다. 비 내리 골목길을 따라 계단을 올라 사리아가 내려다보이는 전망대를 지나가자 공원묘지가 나타났습니다.

 

 

사리아의 공원 묘지는 다른 묘지들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콘크리트로 되어 있는 묘실이 마치 아파트처럼 만들어져 있었는데요, 알아보니 이런 형태의 묘지를 '니초(nicho)'라고 하며 이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장례문화에 속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묘지를 지나가나 마을을 완전히 빠져나오고 본격적인 순례길로 들어섭니다. 순례길은 철로를 따라 나있습니다. 비가 내려서 그런지 유난히 더 고요한 느낌의 순례길입니다.

 

 

걷다 보니 머리 위로 큰 고가도로가 지나가고, 처음에 따라 걷다가 잠깐 사라졌던 철로가 다시 나타납니다. 순례길은 철로를 가로질러 갑니다.

 

 

빗방울이 약해져서 비옷을 벗었습니다. 비옷을 입고 걸으면 통풍이 안되기 때문에 금세 더워져 평소보다 훨씬 더 땀이 많이 납니다. 빗방울은 약해졌지만 보이지 않는 빗방울은 안개처럼 여전히 허공을 날아다니는 듯합니다. 그러다가 입은 옷 위로, 머리칼 위로 내려앉아 걷다 보면 어느새 머리칼이 젖어 있습니다. 

 

만나는 마을들은 빠르게 지나갑니다. 아침 식사를 든든히 먹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길도 질척하고 비는 계속해서 내리며 무엇보다 마을마다 축사에서 풍기는 냄새와 길 마다 가득한 분뇨들로 인해서 걷기가 쉽지 않은 이유가 더 큽니다. 신발에 묻은 것이 진흙인지 분뇨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비로 인해 무거워진 공기 때문인지 분뇨 냄새는 사라지지 않고 저희들을 따라다닙니다.

 

산 미구엘 마을을 지날 때 홀로 풀을 뜯고 있는 소를 만납니다. 아내가 그 소에게 쌓인 불만을 토로합니다.

 

"이 시키들, 냄새나 죽겠네, 똥 밟았잖아~"

 

제 마음을 대변해주고 있는 아내에게 마음의 응원을 보냅니다. 하지만 상대는 대답이 없습니다. 큰 눈망울로 아내를 곁눈질하며 그저 묵묵히 풀을 뜯을 뿐입니다.

 

다시 비가 많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배낭 옆에 구겨 넣어놓았던 비옷을 꺼내 입고 걸어가 아 브레아(A Brea) 마을에 도착하였습니다. 시간은 오후 12시 50분을 지나고 있습니다. 약 3시간가 량을 걸어왔으니 잠깐 쉬어가기로 하고 문을 연 카페로 들어갑니다.

 

식당 이름은 Mirador da Brea 입니다. 비를 피해 쉬어가기 위해 우연히 들린 곳에서 이렇게 맛있는 햄버거와 치킨 너겟을 맛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몸이 힘들어 그런지 기름진 속세의 맛이 그리웠나 봅니다. 아내는 햄버거를 주문하고, 저는 치킨 너겟을 시켰습니다. 치킨 너겟을 주문하자 주인장 아저씨께서 웃으며 'Very good'이라고 하십니다.

 

음식이 나왔습니다. 햄버거는 빵을 동그랗게 잘라서 뚜껑처럼 열려 있고 그 안에는 촉촉한 노른자의 프라이드 에그(계란 프라이)가 보였습니다. 치킨 너겟은 푸짐한 감자튀김과 함께 나왔는데 아직 그 열기가 식지 않아 손으로 잡기에 뜨거울 정도였고 그래서 그런지 아주 오랜만에 먹은 치킨 너겟은 정말 맛있었습니다. 특히 케첩을 듬뿍 주셔서 좋았습니다.

 

정신없이 먹었습니다. 거의 흡입 수준입니다. 맛있게 먹고 있는 아내의 이마에 파리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습니다. 순서를 기다리는 듯합니다.

 

*Mirador da Brea 카페 위치: https://maps.app.goo.gl/L2oqKQSoVg5Gu9Cn9


 

카페 안에는 다른 순례자분들도 여럿 계셨습니다. 간단히 눈인사와 짧은 멘트로 인사를 나누고 다시 출발할 채비를 합니다. 창밖으로는 어제 길에서 만났던 미국인 크리스와 수잔 부부가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바람에 날리는 빗발이 얼굴로 날아와 부딪히며 떨어지는 듯 바닥을 보며 걸어가고 있습니다.

 

순례길의 크고 작은 고개와 모퉁이를 지날 때마다 빗줄기는 굵어졌다 가늘어졌다를 반복합니다. 걷다 보니 페레이로스(Ferreiros) 마을 팻말이 나옵니다.

 

 

계속해서 걸어갑니다. 페레이로스 마을을 지나서 그다음 마을(A Pena) 어귀에 이르렀는데 약 10여 미터 앞에서 누군가 큰 소리로 외치는 소리와 소들의 소리가 섞여 크게 들려옵니다. 그것은 소떼를 몰아 밖으로 나가려던 농부 아저씨의 목소리와 그를 따라 뒤따라 움직이는 소들이 내는 소리였습니다. 구수한 냄새들과 함께 진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맨 앞에는 남자 농부 아저씨가 이끌고 맨 뒤에는 여자 농부 아주머니께서 통솔하셨습니다.

 

어림잡아 약 20여 마리 정도 되어 보였습니다. 소들이 다 나오길 기다렸다가, 그들을 따라 천천히 걸어갑니다. 여기저기서 떨어지는 분뇨를 조심해서 피해 갑니다. 안 그래도 진하게 나던 냄새가 더 강하게 진동합니다.

 

그들을 뒤따라 가던 중 느낌이 조금 이상했습니다. 어디로 부터인지 알 수 없는 이상한 힘에 이끌려 눈을 돌려 왼편에 있던 표시석을 곁눈질로 바라보았습니다. 맙소사! 그것은 바로 그 유명한 '100km 표시석'이었습니다. 수많은 순례자들의 기념촬영 장소이자 온갖 낙서로 얼룩진, 사진으로 보았던 바로 그 표시석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이후에는 본 적이 없던 정말 오랜만에 보는 농촌 소떼들의 진풍경이 반갑고 재미있어 넋 놓고 따라갔으면 놓쳤을 역사적인 장소를 놓치지 않게 되어 감사했습니다.

 

그 앞에 서서 재미있는 낙서들도 읽어보고 잠깐 쉬며 서 있으니 뒤에서 한국 중년 여성분들 네 분이 같이 걸어오셨습니다. 사리아에서부터 출발하여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까지 걸으신다는 이 분들이 찍어주셔서 저희도 같이 기념사진을 하나 남겼습니다.

 

그로부터 사흘 뒤, 저희 뒤에서 걸어오고 있는 패밀리들도 100km 표시석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보내왔습니다. 저희 부부가 빠지면서 네 명이 된 그들은 재미있는 포즈로 잊지 못할 장면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걸은 날은 맑은 날입니다. 같은 장소와 시간을 걸어도 서로 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 신비로운 순례길임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벌써 700km 가까이 왔다는 것과 이제 100km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담담하면서도 충격적으로 다가와 마음이 이상하였습니다.

 

그 마음을 뒤로 한채 앞으로 걸어 나갑니다. 산길은 비에 젖은 가을 낙엽이 내려있고, 마을엔 새들이 내려앉아 휴식하고 있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새들이 앉아 있는 좁고 긴 형태의 건물은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의 전통적인 곡물 저장 창고오레오(Hórreo)라고 합니다.

 

돌판으로 경계석을 세워놓은 논과 밭이 있는 언덕을 올라갑니다.

 

언덕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풍경에 가슴이 시원해 집니다. 저 아래로 오늘의 목적지 포르토마린이 보입니다. 이제 이 언덕만 내려가면 됩니다.

 

약 20여분을 내려가자 미뇨강이 나오고 그 강 너머로 포르토마린이 보입니다. 처음 보는 미뇨강은 강의 폭이 생각보다 넓은 큰 강이었습니다.

 

다리를 건너 포르토마린 마을 어귀에 도착하면, 정면에는 경사가 가파른 계단이 기다리고 있고, 좌우로는 차들이 다니는 차도가 나 있습니다. 저희 앞에서 올라가고 있는 두 명의 서양 여성 순례자분들이 서로의 기념 촬영을 마칠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가 저희도 계단을 올라갑니다.

 

가파른 계단을 다 올라간 후 되돌아 내려다본 미뇨강의 풍경은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계단을 올라오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포르토마린은 도로와 집들이 깨끗하게 잘 정리된 곳이었습니다. 걸어오면서 만났던 시골 농촌 마을의 느낌과는 완전히 다른, 관광지 또는 휴양지 느낌의 마을이었습니다.

 

 

오늘 저희들이 묵을 숙소는 사립 알베르게의 2인실입니다. 마을 거의 맨 안쪽에 위치한 숙소로 가기 위해 완만한 언덕을 올라 마을 안으로 들어갑니다. 중간에 나온 슈퍼에서 저녁식사와 내일 아침 식사용 먹거리를 간단히 사서 갑니다. 슈퍼 앞에는 건강해 보이는 젊은 한국인 청년이 한 명 앉아서 캔 음료를 마시며 쉬고 있습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출처: 구글 이미지)

 

* Pensión Manuel (Albergue Privado) 사립 알베르게: 이 숙소는 다인실 도미토리와 2인실을 갖춘 사립 알베르게였는데, 저희가 도착한 날에는 숙소에 묵는 사람이 저희들 두 명뿐이었습니다. 2인실임에도 불구하고 공용 욕실을 사용해야 하는 곳이었는데, 저희들 두 명뿐이라 사용에 불편함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넓고 큰 공간에 저희들만 있으니 밤에는 약간 무서운 느낌도 들었습니다.

 

주인장은 여성분이셨는데 오후 4시가 넘어서 도착한 저희를 위해서 기다려주시고 체크인과 숙박을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숙소 방과 침구는 매우 깨끗하고 깔끔했습니다. 공용 화장실과 욕실도 매우 청결하였으며 기본적인 샴푸와 바디워시, 드라이기 등이 갖추어져 있었고, 저희가 도착한 날 날씨가 추웠는데 주인아주머니께서 샤워실에서 샤용하라고 히터를 가져다 주셨습니다. 주인 아주머니께서 욕실에 히터를 설치하시고는 틀어주셨는데 내부가 금세 훈훈해져서 좋았습니다.

 

주방은 도구와 식기류가 갖추어져 조리가 가능했었습니다. 저희도 비가 와서 나가기도 애매하여 저녁식사는 숙소에서 조리해 먹었습니다. 저녁식사 메뉴는 슈퍼에서 사 온 초리조, 빠에야, 마카로니 그리고 콜라입니다. 대단한 식사는 아니지만, 맛있게 먹었던 저녁식사였습니다. 초리조는 프라이팬에 굽고, 빠에야와 마카로니는 전자레인지로 데웠습니다. 그리고 매운 컵라면이 비 오는 날 저녁의 화룡점정이 되었습니다.


 

숙소 1층 벽에는 스페인 지형의 고도(높낮이)와 여러 가지 산티아고 순례길 경로가 표시된 입체 지도가 걸려 있었습니다. 순례길을 걸으며 처음에 넘었던 피레네 산맥과 그 후 순례길 중반부에 있는 메세타 평원, 그리고 또 다시 한번 더 넘어야 하는 험준한 산이 있는 오세브레이로 등의 지형이 한눈에 들어오는 지도였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숙소로 올라와 내일을 준비합니다.

 

오늘 걸은 길은 물리적인 거리는 약 22.4km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느낌으로는 피레네 산맥 이후 지금까지 걸은 코스 중에서 가장 길고 지루하며 힘든 날인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부슬부슬 비는 그칠 줄 모르고 계속 내렸고, 그로 인해 땅은 질척했으며, 마을마다 있는 축사에서 풍겨져 나오는 분뇨 냄새, 그리고 진흙과 분뇨의 반죽으로 질척한 길로 인하여 걷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속도는 더디었고, 오늘따라 배낭은 더 무겁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까미노를 걸으면서 이 순례길이 인생길과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날이었습니다. 순례길에 대한 감상은 다음번에 한번 나누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내일은 팔라스데레이(Palas de Rei)로 갑니다.

다음편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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